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🔹 조선어학회 개요
- 설립 연도: 1921년
- 설립자 및 주도 인물: 최현배, 이윤재, 김윤경, 장지영 등
- 초기 명칭: "조선어연구회"로 시작됨 (1921년)
- 1931년 명칭 변경: "조선어학회"로 개칭
- 목적:
- 조선어(한국어)의 연구 및 정리
- 한글 맞춤법의 통일
- 우리말 사전 편찬
- 민족의 언어를 지키고 계승하려는 지식인들의 민족문화 운동
🔹 주요 활동
1.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(1933년)
- 조선어학회가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업적 중 하나.
- 일제는 한국어를 탄압하고 일본어 사용을 강요했지만, 학회는 표준적인 맞춤법 체계를 확립해 한글의 질서를 세움.
- ‘한글 맞춤법 통일안’은 이후 현대 한국어 맞춤법의 기초가 됨.
2. 우리말 큰사전(조선말 큰사전) 편찬 시도
- 1929년부터 우리말을 정리하고자 대규모 사전 편찬 작업 시작.
- 이 작업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중단되었다가, 해방 후 "한글학회"로 이어져 1957년에 완성됨.
3. 잡지 및 교재 간행
- 『한글』 등의 잡지를 발간해 일반 대중과 교사들에게 우리말 연구 성과를 보급.
🔹 조선어학회 사건 (1942년)
- 일제는 1942년, 조선어학회를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탄압함.
- 이윤재, 최현배, 김윤경 등 핵심 인물들이 체포되었고, 고문과 재판을 받음.
- 이 사건으로 인해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일시적으로 중단됨.
- 이윤재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.
- 이 사건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대표적인 예로, 조선어학회의 정신은 이후 한글학회로 계승됨.
🔹 해방 이후의 계승
- 1949년, 조선어학회는 이름을 한글학회로 바꾸고 활동을 재개.
- 해방 후에도 한글 학술어 정리, 외래어 표기법, 사전 편찬 등을 이어감.
- 현재도 한글학회는 한국어 관련 연구 및 정책 제안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.



🔹 조선어학회의 역사적 의의
- 민족정신과 자주성의 상징
- 언어는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.
-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말을 지키려는 활동은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평가됨.
- 현대 국어학의 기초를 마련
- 체계적 언어 연구를 통해 현대 한국어학의 토대를 닦음.
- 교육 및 문화 독립운동의 역할
- 교사, 학자, 작가 등이 참여해 조선어 보급과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침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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