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🔹 1. 생애 개요
- 출생: 1876년 평안남도 평양부 출생
- 사망: 1914년 서울(경성)에서 병으로 사망 (향년 39세)
- 자(字): 경순(敬淳)
- 호(號): 외솔(외솔은 후일 제자 이윤재가 사용, 주시경의 호는 없다는 설도 있음)
🔹 2. 교육과 초기 활동
- 젊은 시절에 한학을 공부했으며, 개화기 당시 신교육에 관심을 가짐.
-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영어, 서양학문, 신학문 등을 익힘. 이때 헐버트 등의 선교사들에게 영향을 받음.
- 이 과정에서 조선어(한국어)의 독자성과 우수성을 인식하게 되었고, 국어 연구에 뜻을 품음.
🔹 3. 한글 연구 및 업적
▶ '국문연구소' 활동
- 1907년, 대한제국 학부(오늘날 교육부)의 산하에 국문연구소가 설립됨.
- 주시경은 이곳에서 지석영, 장지영 등과 함께 우리말의 문법과 맞춤법, 표기법 등을 연구함.
▶ 주요 업적
- ‘한글’ 명칭 사용
- ‘언문’이나 ‘아해 글’로 불리던 글자를 ‘한글’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사용하여 정착시킴.
- ‘한글’은 ‘큰 글’, ‘우리 글’이라는 뜻으로 자긍심을 담고 있음.
- 국어 문법 체계 정립
- 한국어의 음운, 문법, 어휘 등을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정리.
- 당시까지 문법적 설명이 없던 한글 문장을 과학적 방식으로 기술하려 노력함.
- 맞춤법 통일 및 정리
- **1908년 『말의 소리』(≒음운론서)**를 저술하여 한글의 자모 체계와 발음 원리를 설명.
- **1910년 『국어문법』**에서는 문법 체계를 현대적으로 설명. 문장 성분, 품사, 활용 등을 기술함.
- 철자법의 규범화에 기여하여 후일 한글 맞춤법의 기초가 됨.
- 우리말 교육 실천
- 보통학교와 사범학교에서 국어 과목을 가르침.
- 백성들이 우리말과 글을 쉽게 배우도록 가르치고, 교육서를 집필.
🔹 4. 제자 및 영향력
주시경은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인 이극로, 이윤재, 최현배, 김두봉, 장지영 등 수많은 제자를 길러냄.
이들은 후일 조선어학회(현 한글학회)에서 활동하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, 큰사전 편찬 등의 사업을 이어받게 됨.
🔹 5. 사망과 유산
- 주시경은 **1914년 폐병(결핵)**으로 요절하였지만, 그의 학문적 유산은 이후 한국 국어학과 민족주의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.
- 한글학자들이 ‘한글의 아버지’ 또는 ‘근대 국어학의 시조’로 그를 기림.
🔹 6. 주요 저서 및 문헌
저서명발간년도내용
『말의 소리』 | 1908 | 음운론 중심, 한글 자모 해설, 발음 원리 설명 |
『국어문법』 | 1910 | 최초의 근대 국어 문법서 |
『국문문법』 | 미완성 | 후일 제자들이 정리 |
『국문연구안』 | 공동 저술 | 국문연구소 활동의 결과물 |



🔹 7. 평가
- 한글을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본 인물.
- 주시경의 연구는 단순한 언어학적 작업이 아니라 민족 독립 의식과 직결된 실천적 학문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됨.
- 한국 근대 언어학의 기초를 놓은 인물로 국어교육, 국어학, 한글운동 전반에 걸쳐 깊은 족적을 남김.
🔸 마무리
주시경은 일제 강점기의 초입이라는 암울한 시대에 우리말을 지키고자 혼신을 다한 선각자였습니다.
그의 업적은 단지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,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문화운동의 일환이었기에 지금까지도 존경받고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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